역사

한성백제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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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건국과 성장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인 온조가 기원전 18년에 백제를 건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제8대 고이왕(234~286)때에는 낙랑을 공격하고 영역을 확장하였으며, 관직의 등급을 매기고(16관등제) 관복제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6좌평을 설치하고 법을 정리하는 등 국가 통치조직을 정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의 전성기는 제13대 근초고왕(346~375)때이다. 한반도 남부의 마한세력을 병합하고 가야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371년에는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그 세력이 지금의 황해도와 전라도까지 미쳤다.
4세기 후반부터 100여년간 백제는 고구려와 대립하였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진정책으로 갈등이 한층 격화되었다. 고구려 장수왕은 427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475년 백제의 수도를 공격하여 백제 개로왕(455~475)을 살해하였다. 백제는 수도 한성이 함락되자 웅진으로 수도를 급하게 옮겼다.

주변 나라와의 교류

  • 고구려
    신라
    가야와의 교류

    신라는 4세기 무렵부터 백제와 본격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어 5세기에는 두 나라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다. 368년 근초고왕이 신라에 좋은 말 2필을 보냈으며, 비유왕 때인 433년에는 고구려의 남진에 공동으로 대항하기 위해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었다. 475년, 고구려가 백제 왕도 한성을 공격하자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도우려 하였다.
    가야의 여러 나라도 백제와 동맹관계였다. 백제는 가야 지역을 통해 왜와 안정적으로 교류하였다. 풍납동토성·몽촌토성에서 출토된 가야토기는 이러한 교류관계를 보여준다.

  • 왜와의 교류

    왜와의 교류 - 교역국, 교역품 순으로 정보를 제공하고있습니다.
    교역국 교역품
    한성백제 웅진백제 사비백제
    백제→일본(왜) 외교선물 및 특산품
    • 칠지도, 칠자경, 흰 면포, 각궁전(角弓箭= 기병용 활과 화살), 덩이쇠, 오색 채견, 천자문
    • 매, 철제품, 토기
    • 오경박사 등 유교 및 불교 경전, 토기
    • 역서(曆書), 비단, 도끼, 탑등(毾㲪= 양모로 만든 카펫), 불상, 불사리, 경론, 천문서, 지리서, 방술서, 바둑판
    • 금속세공품, 토기
    일본(왜)→백제 외교선물 및 특산품
    • 야명주(구슬)
    • 구슬
    • 목재
    • 목재
  • 중국과의 교류

    중국과의 교류 - 교역국, 교역품 순으로 정보를 제공하고있습니다.
    교역국 교역품
    한성백제 웅진백제 사비백제
    백제→중국 외교선물 및 특산품
    • 비단, 해산물
    • 인삼, 대율(大栗= 큰밤, 마한밤), 긴꼬리닭
    • 해산물과 포백(布帛= 베와 비단), 인삼, 대율(大栗= 큰밤, 마한밤), 긴꼬리닭
    • 명광개(금휴개, 갑옷), 철갑, 조각한 도끼, 과하마, 황칠(금빛 나는 塗料), 인삼, 대율(大栗= 큰밤, 마한밤), 긴꼬리닭
    중국→백제 외교선물 및 특산품
    • 유교 및 불교 경전, 요노(腰弩. 휴대용 쇠활), 도자기, 차, 서적
    • 도자기, 차, 서적
    • 비단 도포, 채색 비단, 도자기, 차, 서적
[중국]허리띠꾸미개-몽촌토성

[중국]허리띠꾸미개-몽촌토성

[중국]양모양청자-원주 법천리 2호 석실

[중국]양모양청자-원주 법천리 2호 석실

출처 : 한성백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