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유적

철, 강한 나라를 만들다 - 칠치도

백제는 우수한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철기를 만들었다. 특히 수준 높은 상감 기술을 이용해 칠지도를 만들어 왜왕에게 주기도 하였으며, 고리 달린 큰 칼과 각종 꾸미개도 만들었다. 칠지도의 전체 길이는 74.9cm이고 손잡이 내지 연결부를 뺀 칼날 부분이 66.5cm이다. ‘일곱 갈래의 가지로 된 칼’이라는 뜻을 가진 칠지도는 몸통 좌우로 3개씩 가지가 뻗어 있다.

칠지도의 앞면과 뒷면
  • 앞면 泰和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銕七支刀出(生)辟百兵宜供供侯王△△△△祥(作) 태화 4년 5월 16일은 병오인데, 이날 한낮에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에게 나누어 줄만하다. △△△△가 만들었다.
  • 뒷면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가 뜻하지 않게 성음이 생긴 까닭에 왜왕을 위해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도록 할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해석)

지붕을 수놓은 꽃과 동물 - 수막새

기와는 집의 지붕을 덮는 건축자재이다. 백제 한성기 기와는 암·수키와와 수막새 등이 있다. 한성기의 수키와는 무늬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암키와는 격자무늬·선무늬가 있다. 수막새에는 풀꽃무늬草花文, 나뭇가지무늬樹木文, 동전무늬錢文, 동그라미무늬圓文, 마름모무늬菱形文, 연꽃무늬蓮花文 등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겼으며, 민무늬無文도 있다. 불교가 융성하기 시작한 웅진기부터는 수막새에 연꽃무늬가 대부분이고 사비기에는 바람개비무늬巴文도 있다.

  • 01동전무늬 02동전무늬
  • 03동전무늬 04동전무늬
  • 05동전무늬 06민무늬
  • 07풀꽃무늬 08풀꽃무늬
  • 09풀꽃무늬 10짐승얼룩무늬
  • 11짐승얼룩무늬 12수레바퀴무늬
  • 01 ~ 05동전무늬
  • 06민무늬
  • 07~09풀꽃무늬
  • 10~11짐승얼룩무늬
  • 12수레바퀴무늬

왕이 살다-몽촌토성, 풍납토성

풍납토성 풍납토성
풍납토성 동쪽 성벽 절개면 풍납토성 동쪽 성벽 절개면

풍납토성

풍납토성은 1963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성벽의 전체 둘레가 3.5km에 달하는 큰 규모였으나 지금은 2.2km 정도만 남아있다. 성곽은 외부세력의 침입을 집단으로 막는 고대사회의 중요한 방어 시설이었다. 따라서 방어하기 쉽고 잘 허물어지지 않는 성곽을 쌓기 위해 당시 최고의 토목 기술을 총동원하였다. 이곳에서 백제 궁궐시설의 일부로 보이는 각종 유구와 도로, 대형 건물지, 일반 집자리, 배수로 등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다.

몽촌토성 몽촌토성
뼈갑옷 (몽촌토성) 뼈갑옷 (몽촌토성)

몽촌토성

몽촌토성은 남한산성 끝자락인 해발 45m 내외의 자연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토성이다. 전체 둘레 2.3km이고 형태는 남북 730m, 동서 570m의 마름모꼴에 가깝다. 동북쪽에 작은 외성이 있으며 성 외곽에는 구릉 아래쪽을 따라 자연하천을 이용하여 만든 해자(垓子)가 있다. 또한 이곳에서 백제 한성기의 적심석을 갖춘 지상건물터, 판축 대지, 움집터, 저장구덩이, 연못터, 목책 등이 조사되었다.

영원히 사는 곳, 무덤 - 석촌동고분군, 방이동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을 보면 백제 초기 고분의 구조와 계통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석촌동 3호분은 동서방향의 길이가 약 50.8m이고, 남북 방향의 길이가 48.4m로 추정되는 방형의 계단식 적석총이다. 산에서 가져온 돌을 다듬어 계단 모양으로 최소 3단 이상 쌓았는데, 근대이후 도시개발로 윗부분이 모두 파괴되어 높이 4.5m 이상에 대해서는 원래 형태를 알 수 없다.

방이동 고분군 방이동 고분군
방이동 고분군 방이동 고분군

방이동 고분군

서울 방이동 일대에 있는 백제전기(4C초∼475)의 무덤으로 한성백제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제1호 무덤은 봉토의 지름이 12m, 높이 2.2m로 널길(연도)과 널방(현실)을 가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다. 6호 무덤에서 나온 회청색경질 굽다리접시의 경우 굽구멍(투창)이 전형적인 신라토기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이는 6세기 이후 한강유역이 신라영토가 되었을 때 만들어진 신라무덤이라는 견해도 있다.

출처 : 한성백제박물관